통일문제특별위원회 특별강연회/ 남북통일 전망과 과제(14.11.25)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남북통일 전망과 과제
남북관계가 풀릴 듯하다가 막혀버린 상황이어서 걱정입니다. 여러분들의 우국충정의 마음을 해소해 드려야 하는데, 제가 여러 가지를 잘 숙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 앞섭니다. 그렇다면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는 뭘 하고 있으며, 뭘 하려고 하느냐 입니다.
통준위는 지난 7월 15일 발족해 일을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1월 6일 대통령께서 신년기자회견을 하면서 “통일은 대박이다”고 말을 하셨습니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금년 2월 25일에 취임 l주기를 하면서 통일준비위 발족을 발표했고 지난 3월 20일 대통령령으로 통일준비위도 관련법 마련으로 발족, 활동 중입니다. 사실 지난 4월에 하려고 했는데 불행하게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로 국정이 흔들리면서 시간이 흐르다가 8월 7일에서야 대통령을 모시고 그 첫번째 전체회의를 했습니다. 제가 민간 부의장 자격으로서 앞으로의 통준위의 계획에 대해 대통령께 보고 드렸고 그 계획에 따라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자문기구로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전체회의는 분기별로 한번씩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통령의 관심이 특별합니다.
석 달보다 훨씬 빠른 주기로 10월 13일에 두번째 전체회의를 통해 여러 가지 통일과 관련된 과제의 중간보고도 드렸고 금년이 가기 전 다음 달 초에 세번째 전체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대통령도 통일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나면 2시간 30분 정도 할애되는데, 활동을 보고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통령과 자유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제를 정해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전체 회의때 박대통령의 통일에 대한 철학이나 관심과 배려가 대단히 특별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통령의 통일에 대한 생각의 뿌리가 오래되었다고 보입니다. 자서전을 보면 박대통령은 “1974년 8월에 모친이 조총련과 관련된 테러리스트 흉탄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테러니스트의 흉탄에 돌아가셨을 때 통일이야말로 민족적 비극을 뿌리 뽑을 수 있는 방책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 후 2002년 5월 평양 방문시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후일담을 보면 김정일 위원장을 회담 하면서 “6.15 공동선언의 뿌리는 7.4 공동성명의 뿌리에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직까지 그 결실을 못 거두고 있습니다. 김위원장님과 제가 같이 노력해서 7.4공동성명이 결실을 맺도록 같이 노력합시다. 김정일 위원장님 약속하십니까?”라고 물었고 김위원장은 “약속 합니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박대통령이 살아온 궤적을 보면 남북관계의 굴곡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 당시에 남북관계가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에 살아가는 생활이 남북관계와 관계가 없지 않았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굴절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로 막아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기회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국민들간의 통일 공감대 확산이 제1과제
통일준비위 규정 제1조는 통준위는 국민들간의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입니다. 제2조는 통일에 대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제3조는 통일관련 전략 수립에 있어 국내의 여러 정보와 여러 단체와의 협업 체계를 구상하는 것입니다.
통일준비위에서 통일을 준비하면서 왜 남남 갈등을 이야기 했을까요? 남남 갈등 해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못 박혀 있습니다. 통일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점점 식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에 대해 젊은이들의 관심이 냉소적일 정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보수와 우익 사이에 통일을 놓고 대화하지 않습니다. 대화하고 토론하지 않습니다. 저희 통준위에서는 이런 것은 고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이념적 철학 소신에 의해 남의 얘기를 배격하는 정치적 풍토가 있는 동안은 우리에게 통일이 온다 하더라도 힘들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이 일을 하면서 탈북자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학교에 가면서 “이제 학교 안 갈래” “이제 학교 가니깐 탈북자 자식이라고 놀림과 따돌림을 받으니 안 갈래 한다”고 합니다. 남한에 있는 탈북자들이 이런데, 통일이 되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이번 제3차 전체 회의때 남남갈등을 보고 드릴 것입니다. 남남갈등이 있는 한 통일 논의는 공허하다고 봅니다.
통일로 갈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현안 문제보다는 중장기적인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통일로 가는 로드맵을 저희가 만들고 있습니다.
통일관련 단체들과 협업체계를 구상하는 ‘통일 거번먼스’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2시부터 저희 통준위 자문단이 참여하는 회의가 마련돼 있습니다. 시민단체 가운데 65개가 사회문화, 정치·법·제도 20개가 못 되는 단체가 있습니다. 오늘은 시민단체하고 오후에 회의를 합니다. 정치·법·제도 분과에 헌정회를 자문단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대북단체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 범주에 헌정회가 참여한다는 것이 좀 부끄럽습니다. 헌정회 통일문제특별위원회에서 기회를 준다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비공식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부,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 등 그 밖의 정부단체 200여 단체와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기 위해 회의를 여러 번 했습니다. 통일문제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제도적인 장치를 구상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조만간 빠른 시일내에 그림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통준위 위원이 전부 50분인데, 전문위원은 각 대학과 연구소 소속으로 연구위원으로 40대, 50대, 60대 초반으로 20분은 정부 출신이고 30분은 민간 출신 위원 입니다. 정부위원 가운데 대통령이 위원장이고 장관이 7명,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수석, 안보실 차장, 평통 사무처장, 역대 6대 국책연구소의 장으로 되었습니다. KDI, 국방연구원, 국립외교원, 통일연구원, 국토연구원, 국정원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등의 조직의 장이 머리를 맞대고 통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여야당 정책위의장(여당 주호영, 야당 백재현) 저희 위원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적어도 구색으로 보면 초당적입니다. 민간은 30분인데, 북한과 한반도문제 전문가들로 구성, 외교안보, 경제사회문화, 정치법제도 등 4개 분과위 배속되어 있습니다. 9월 5일 워크샵을 통해 앞으로 20개 정도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적어도 금년내 프로젝트를 한 번 하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회의를 논의해볼 예정입니다.
‘통일헌장’ 만들어 미래 통일한국 구상 제시
20개 과제 중에는 여러 개가 있습니다만 일일이 말씀 드리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첫째, 통일헌장(통일 청사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택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반 국토통일원이란 관련 부처가 생긴 지도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통일에 대한 청사진이 없었다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건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통일 청사진이 채택된 것이 1989년 노태우 정권때 이홍구 통일원장관이 합의적 통일방안입니다. 그것이 이 정부에서 그것을 통일방안으로 계승 발전시킨 것입니다. 미래 통일 방안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공동체 통일방안이 벌써 만든 지 25년이 지났습니다. 그 당시는 냉전 붕괴때고 지금은 냉전 후기 체제입니다.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북한 정권에서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등으로 이어지는 3세대 정치 체제에서 25년전 만든 통일방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비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하고 바꾸기로 했습니다. 통일 밑그림을 그리고 우린 그 생각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통일 관련 대토론회나 공청회 등을 거쳐서 내년이 광복과 분단 7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것을 계기를 미래 통일한국 구상을 제시하고 합의해 채택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과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공외교, 통일에 대한 국민 공감대 형성, 북한에 대한 민생 기반 구축, 북한에 산림녹화, 농촌 생활 개선 프로젝트 등 시베리아, 중국 등으로 연결하는 한반도 종단 철도를 구상중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여러 가지 구상중입니다. 궁극적으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연결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이룩하려고 합니다.
그중 구체적인 것인 개성공단 활성화 관련해 모자 보건 프로젝트입니다. 보도에 의하면 북한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 영유아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모자천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산모와 영유아 발육에 대단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런 모자건강에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아이를 가진 임산부뿐만 아니라, 태아들도 잘 자라는 영유아 건강이 대단히 중요해요. 지금 북한은 영양 부족으로 젊은이들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민간 단체를 통하여 도와주고 있습니다. 특히 개성공단에 들어온 북한 근로자의 70% 이상이 여성으로 대부분 근로자로 가임여성인데, 우리를 위해 노력 봉사하고 있고 적어도 그 사람들만이라도 영양분을 보급해서 좀 더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에 의료시설과 탁아시설을 만들어줘 해서 건강을 우선적으로 돌보아줄 계획입니다.
DMZ 생태공원 프로젝트는 대통령께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DMZ가 155마일 넘지 않습니까? 조그마한 장소를 선정해서 그것을 평화와 생태의 전시장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분단 후 남북간 합의를 해서 그것을 계기로 만든다면 상징성이 있다고 봅니다. 70년 가까운 기간에 휴전이후 61년 동안 군사적 긴장, 휴전지대가 평화의 지대로 바뀐다면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봅니다. 그것이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온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상징적인 평화 사이에 괴리가 있을 것입니다만(북한이 변하지 않는다면 힘들지만) 박대통령은 지난 8.15경축사에서도 “작은 통일이 큰 통일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김영삼 대통령을 모시고 2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제네바 협정에 의해 핵문제를 봉합한 상태에서 공직생활을 그만둔 상태여서 저로서는 대단히 아쉬운 회한의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그런 관계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화해 국면의 시기를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자신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봅니다. 북한은 사실 갈 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조그만 도발과 남북관계를 흔드는 조금만 사건들은 있어도, 그러나 크게 보아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대세적 입장에서 우리의 호응에 올 수 밖에 없는 시점에 왔다고 봅니다. 아직은 판단이 빠르겠습니다. 북한 내부 상황이 상당한 정도로 시장경제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북한 경제가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위축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값싼 물건들을 사와서 북한에서 팔아 부를 축적한 붉은 자본가들이 꾀 빠르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380개의 장마당이 있는데, 그곳에서 쌀값을 결정할 정도(정부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로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정부가 통제하는 상황은 이제는 상당히 옛날 얘기입니다. 물론 북한 정권이 바로 무너지는 것으로 연결은 힘들겠지만 외부의 물결이 빠른 속도로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中은 한반도 평화통일 대원칙, 중국에 적대적이지 말 것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주중 대사를 한 지 벌써 18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상당히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 북·중 관계가 과거 일이 되었고 북한과 중국의 간격이 굉장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을 포기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정서적으로 멀어졌지만 한반도 통일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주중 대사로 있을 때 통일의 ‘통’자도 못 꺼냈습니다. 제가 재임중 중국 국방장관을 만나려고 하니깐, 중국측에서 한국대사가 중국의 국방장관을 왜 만나느냐고 반문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중국 학자와 우리 학자들이 개방적으로 논의도 자유롭게 합니다. 중국이 보는 한반도 문제는 그만큼 달라졌습니다. 재임중 故 황장엽 선생 일을 처리하면서 제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습니다만, ; 통일문제에 대해 지금 중국입장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중국의 한반도 통일정책이 변하고 있습니다. 황장엽 사건 이후, 중국 정부 관리는 당시 중국 외교부 차장이 저의 카운터 파트너였는데, 황선생 일로 16번이나 만났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는 한국대사가 황장엽 사건을 무사히 끝내고 간다니까 한반도에 대해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내가 학자였는데, 중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입장이 굉장히 궁금하다. 외부에 말을 안 할 테니 말을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3가지 조건을 말했다. 첫째는 평화통일, 둘째는 통일 한국정부와 북한 정부가 중국에 대해 적대적인 행위를 하는 통일 한국을 용납할 수 없다. 셋째, 중국에 적대적인 나라와 동맹 관계가 심히 우려된다. 즉 한미동맹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풀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중국도 한반도 대세를 받아주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지금이야말로 통일 문제를 말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시기이고 그만큼 비용이나 대가가 적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통일을 지금까지 부담으로만 생각하고 통일비용이 많이 든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경제 성장의 도약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준위의 기본적인 입장도 바로 통일 남한은 물론 남북한 모두 정치경제적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며 아마도 주변국들도 축복의 기회라고 생각할 겁니다.
<질의 응답>
박진(통일특위 간사) : 정종욱 통준위 부의장께서 남남 갈등, 통일 청사진 마련, 중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생각 등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질문이 있으시면 3분 정도 간략히 말씀해 주세요.
이철승(원로회의 의장) : 소중한 시간 할애주시고 좋은 말씀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는 감회가 새롭습니다. 통일을 준비한다고 그러면서 박대통령은 ‘통일이 대박’이라고 하면서 통일 준비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에 대해 우리는 대단히 의아심을 갖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통일준비위원회에서 우리 원로들을 초청해서 우리가 실질 회복을 어떻게 했는지 서로 의견을 듣고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 말씀하신 통일은 우리가 매너리즘에 빠져서 어떻게 보면 이적 행위를 해왔어요. 북한이 미사일과 핵을 만들 때 어떤 돈으로 만들었어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준 지 알고 있어요. 그 돈은 우리 국민 혈세입니다. 그걸 통일원에서 통일이라고 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국민 혈세인 그 돈으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만들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으로 얼마나 준 지 알아요. 그것들이 모두 국민의 혈세를 준 것입니다. 그것을 국회 예산 심의때 보고라도 한 일 있어요? 그동안 그들이 갖다 준 것은 바로 이적 행위라고 봅니다. 통일이란 헛배 부른 소리만 하고 우린 밑으로 다 빠져 버리고 통일 준비는 우리가 하는 것이죠.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었어요. 모스크바에서 결정한 신탁통치에 반대해서 만든 것 아닙니까? 우리 역사는 이조 오백년도 아니고 김구선생의 임시정부의 연장도 아닌데, 박대통령이 이런 것을 알아요. 북한이 천안함 사건 일으켰는데도 사과 한 마디를 받지 못한 채, 필요하면 손을 벌리고, 급하면 사람을 보내고 하는데 국민적인 ‘통일’에 대한 정의가 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은 단군이래 기적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건국기념일이 없는 것이 말이 됩니까? 적어도 통일 운동이라면 국민운동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통일도 우리의 역사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온고지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진(통일문제특위 간사) :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인 안목을 반영한 방향에서 통일을 추진할 것이냐 하는 것들에 대해, 대통령께 건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명서(14대 의원) : 대통령의 통일에 대한 철학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중국대사를 지내시고 학자로서 중국과 미국의 역할 관계를 삽입해서 말씀해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국립외교원 <외교백서>를 본 일이 일이 있습니다. 2040 통일운동이 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에는 그런 것이 좀 없는 것 같은데, 2040의 정치 통일 그런 내용이 들어있어 결국 2040년이면 과연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G7과 브릭스의 위치가 바뀌어, 중국·인도·미국의 국가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하는데 과연 2040통일 과제에 대해서 어떻게 변화가 올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충환(17·18대 의원) : 지금 북한과 남한 관계가 굉장히 나쁩니다. 안보를 강조하다 보면 남한이 이북을 사랑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점차 남한의 애정이 줄어들고 있다고 봅니다. 점차 남북관계 응집력이 줄고 있습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체코와 슬로바키아처럼 70년 동안 전쟁해온 관계에서 통일이 과연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탈북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데, 말로 통일을 논의해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북한이 통일을 지향할 것 같지만, 북한이 통일을 추진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입니까?
정종욱(통준위 부의장) : 가능하면 많은 의견을 반영해서 할 것입니다. 이철승 원로님의 말씀이 마음의 비수처럼 옵니다. “역사가 없는 국민이 가장 불행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기로에서 국내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우려를 깊이 새기며 일을 할 것입니다. 박대통령도 남북관계에 3가지 금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쇼하는 것은 안 하겠다. 둘째, 밀실야합을 통해서 협상을 안 하겠다. 셋째, 북한에 대량 현금이 들어가는 건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원로께서 그런 우려일 것이라고 봅니다.
박진 간사께서 말씀하신 대통령에게 헌정회 여러분들이 건의하는 것은 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청와대 사람들과 이야기 할 기회 있으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박명서 교수께서 질문하신 것은 구체적인 것을 잘 모릅니다. 백서가 공동으로 토론한 것을 토대로 만든 것이어서 그것이 대통령의 입장이고 정부입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얼마전 조선일보와 국립외교원이 공동으로 신문에 연재해 상당히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충환 의원님께서 제기한 남북한의 이질감을 어떻게 극복해 통준위에 반영하느냐 입니다. 제가 중국을 공부했는데, 중국에서 모택동시절 개혁개방전 일입니다. 중국을 탈출해 홍콩으로 간 난민들을 인터뷰한 것을 보았습니다. 유명한 심리학자가 쓴 책인 <공산주의는 영원하다>에서는 중국을 탈출한 사람들이 홍콩으로 가서 생활하는 것을 오랜 기간 연구한 내용입니다. 결론은 중국 공산당이 중국 인민들에게 굉장히 단단하게 보입니다. 홍콩에서도 의식 구조가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무너지는 구멍이 나오면 금방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전체주의 집단의 사고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이질화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 통일에 대해,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고르바초프도 독일에서는 영웅으로 대접받았습니다만, 지금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동독 사람들이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동독이 서독으로 편입되는 것을 원했습니다. 독일이 하나로 된 것은 동독 수도 체제를 투표해서 하나의 수도로 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 속으로 들어온 것이 독일 통일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것을 교훈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