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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세미나-한국교육의 문제와 발전과제
관리자
200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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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3일)
한국 교육의 문제와 발전 과제
金璟東
서울대 명예교수, 사회학
교육은 우리나라 온 국민의 첨예한 관심사이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더 복잡하다. 모두가 전문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고 정보를 제공하는 현실이다.
제가 서울대 보직을 맡고 있을 때 대외관계라든지 언론관계를 주로 다루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서울대 주재하는 기자들을 위해 기자실을 마련했다. 당시 기자들은 관악경찰서를 출입하는 기자들로서 관내 사건을 찾다가 없으면 서울대학에 와서 무슨 사건이 없나 기웃거리면서 서울대 교정을 배회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는 입시철만 되면 세계 유례 없이, 이웃 일본이나 대만과 비교해도 상당히 신문이나 방송에서 클로즈업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신문이나 방송국에서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나라는 없다. 입학철에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입시문제 하나를 가지고 경쟁적으로 매년 보도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하여간 교육에 관한 한 별난 나라이다.
교육 문제는 원래 복잡하고 광범위하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문제를 세분화 해서 전문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가 얼마 전에 교육 관련 책을 하나 냈는데, 아무래도 사회학적인 입장이다 보니 교육문제도 하나의 사회 현상의 시각일 수밖에 없다. 교육이 전 국민의 관심사이자, 우리나라 발전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기에 전문가적 시각에서보다는 사회학적인 포괄적인 시각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근 사학법 문제를 놓고 여론이 분분한데,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본다. 지은희 前 여성부장관이 최근 덕성여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지은희씨는 여성계의 진보파의 한 사람이다. 지은희씨는 이대 사회학과 출신인데, 1970년대 초 노동운동이 격화되었을 때(외국기업이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올 당시) 학생신분으로서 기업에 들어가 여직원들의 의식화 교육을 담당했던 선동자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운동권 초기 명성을 날렸던 그런 사람이 여성단체 회장, 여성부장관, 여대 총장까지 하게 되었다.
일전에 모 사립대 총장(운동권 출신)이 임기가 만료되어서 그 학교 이사장으로부터 총장에 서류 전형을 넣어보라는 얘기를 듣고서 동료 후배 교수(운동권 대부)에게 상의했더니, 첫 마디가 “김 선생은 민주화 운동의 실적이 없기 때문에 소용없습니다”라고 했다.
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일들이지만, 이처럼 우리 교육계 가운데 상당한 부분의 사학에는 이미 하나씩 공략을 당해 점령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정원식 교육부장관 시절 대학인가위원회 위원장인 김호길씨가 지금은 작고했지만, 한 일화를 소개해줬던 것이다. 영국에서 잘 가르치고 있는데, 한국의 모 공과전문대학(2년)을 운영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들어와서 직접 운영을 해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운영방식이나 학교 주요 배치 학과를 모두 서울대를 본 떠서 하고 있으니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서울대는 4년에 걸쳐 배우는 커리큘럼을 공과전문대에서는 2년 만에 그 많은 커리큘럼을 다 마쳐야 하니 학생들은 알아듣지는 못한 채로 졸업장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니 공과전문대라면 중요한 기능을 교육받아 현장에 나가 직접 활용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데, 서울대 공과대학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운영을 하니 이게 대학 교육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전 신문 칼럼에 중·고등학교 ‘교실 붕괴’에 대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경제학자 출신인 교육부장관은 내게 전화를 걸어 “김 교수 그럴 수 있느냐”며 전화로 꾸지람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하나의 경고성 글이라고만 하고 말았지만, 그 장관은 “그런 자료가 있으며 달라”며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요즘 중학교 교실에 가보면 정말 ‘따로 논다’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뒤에 있는 학생들은 휴대폰이나 심지어는 DMB를 가지고서 앞에서 설명을 하는 선생님의 말은 안중에도 없고 그야말로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이 공교육의 현주소이다.
선진국에서 이미 하고 있는 “능력별 반 편성” “과목별 차등 학습”이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한 군데 다 모아 놓고 공부를 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는 것 같다. “영어, 국어, 수학 등 과목에 따른 능력별 반 편성을 해야 효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이 같은 학습 체계에 대해 두 집단에서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한 부류는 전교조 소속 교사이고, 또 다른 부류는 학부모집단이다. 그런데 두 부류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특징이 다르다. 학부모들은 우리 애를 하급반에 놓으면 차별 대우를 받게 된다는 체면치레 측면이 강하다. 반면 전교조 소속 집단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서울대 기획실에 보직을 맡으면서 느낀 점인데, 서울대 교정에 들어오는 버스는 좌석으로 요금이 1천 원이고 정문에만 서는 버스는 5백 원이다. 정문에서 교정까지 걸어오는데 도보로 15분 정도다. 이에 대해 학생회에서는 입석버스도 학교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안으로 버스가 통행할 경우, 교통혼잡을 비롯해 공간 문제 등을 이유로 들어 결국 들어오지는 못했다.
우리나라 경제는 껍질로는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의회 정치를 지향하고 있지만, 의식 관행상으로는 사회주의 사회를 추구하는 ‘차별 불가’의 의식이 팽배해 있는 듯 하다.
고등 교육도 ‘평등 교육’을 외치고 있지만, 정부는 3不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①고교 평준화 ②대학별 본고사 ③대학 기여금 금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정책을 하나 하나 따져 보면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있다.
초등 교육의 현실은 또 어떤고 하니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있는 제자가 공부를 마치고 논문을 정리하느라고 혼자 남고 부인과 애들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미국에 있는 초등학교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을 제자인 아버지가 살짝 열어 보았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초등학생인 아들의 이메일 내용 중에 “korea suk”라는 것이 있었다 한다. 이 뜻은 “한국은 엉망진창”이란 의미로 “죽어도 싫다”라는 뜻이다. 초등학생의 시각에서 한국의 학교는 불리하고 부정하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그 부인은 하바드대 근처 보스턴에서 거주했음으로 전 세계적인 유명교수들의 부인과 자녀들이 함께 친교하면서 지낸 것을 교훈 삼아 귀국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서 동네 애들을 모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한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주택지에 대낮에 애들이 없다. 학교 공부를 마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으로 간다. 애들을 모아 놓고 동화를 들려주고 음악을 들려주자고 하니 동네 엄마 말이 학원에 돈만 주면 알아서 하는데, 왜 힘들게 하느냐는 것이 답변이었다고 한다.
시골 학교에 얽힌 한 에피소드다. 폐교 직전의 학교에 학생이라곤 단 2명. 남학생 1명, 여학생 1명이고 학교 일을 도맡아 하는 급사가 있었는데, 2명의 학생들이 시험을 치면서 부정 행위를 하자, “야! 이 녀석들아, 전교 1~2등 하는 놈이 컨닝을 하면 되느냐”고 했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다.
교육의 근본 문제를 따지면 엄청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특히 고등 교육이 문제다. 모든 교육이 서울대 같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영국에서 심포지움을 하는데, 대학의 종류를 성격에 따라 맨 위에 ‘블루 스카이 유니버셔티(blue sky university)’로 구분하는데, 이 부류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이고 순수 연구를 하는 대학을 말한다. 중간 중간에 현장을 중시하고 기능과 기술을 중시하는 대학 등 여러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이 유독 ‘블루 스카이 유니버셔티’만을 지향하고 있으니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둘째, 70%의 대학이 박사 과정을 양산하고 있다. 지방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도 자신의 학교에 취업할 수 없는 형편에 지나치게 많은 박사 양산은 고등 실업자의 양산만 부채질하게 된다. 오히려 박사 학위만 양산하는 대학 몇 %, 석사 과정만 양산하는 대학 몇 %, 4년제 학사 과정만을 두는 대학 몇 %, 2-3년제 전문대를 중요 지역에 두어 기능 학습 위주로 해서 취업이 가능하게 하거나 현장에서 다시 재교육의 기회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교육 발전을 위해서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즉 대학 교육의 분업화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최근 고등학교 평준화를 주장하는데 이것은 절대 아니다. 현행 체제에서는 지역별 등교 제도에 불과하다. 평준화는 모든 학교에 같은 재질의 환경을 조성하고서 학습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능력별 반 편성을 안 하면 같은 교실에서도 우등생은 졸고 지진아는 졸고 중간층만 선생님과 공부하는 우리 교육의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중간층만 어정쩡한 상태로 되는 ‘미디오크’가 발생하는 것이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100위권에 들어있는 대학 중에 한국에 어디 있는가? 서울대가 언어영역에서 100위안에 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서울대 학생이 얼마나 똑똑한가? 그런데 교육 정책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교육의 현주소가 이거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제자 가운데, 미국의 공과대학를 나와 MIT 대학원에서 첫 학기에 수강 과목 중 하나가 A+가 받았는데, 담당교수 말이 질문에 완벽하게 모든 정보를 다 써놓았기 때문에 A+를 주었지만,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답을 쓰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유인즉 질문에 관련된 모든 정보는 다 적어놓았지만, 정작 네 자신의 생각은 하나도 없다라는 것이다. 글로벌시대 교육은 점차로 개인의 창의력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교육 현실은 입시 위주로 획일적인 교육만이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학생 개개인의 두뇌는 괜찮은데 획일적인 교육으로 인해 한국 교육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교육의 평준화’를 외치지만, 현 방식은 교육의 평준화가 아니다. 과거 경기고와 서울고가 명문고로 명성을 날렸지만, 요즘은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 가운데 대원외교, 경기고 출신들이 가장 많다. 그 이유는 훨씬 차등화 되고 좋은 환경 속에서 교육받기 때문이다.
‘평준화’는 교원의 자질과 학교 시설이 비슷한 데서 능력별 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현재 ‘평준화’는 지역별 등교만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현재로서는 불가하다. 이것이 우리 교육정책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짐수레에 짐이 가득 실려 있지만, 바퀴가 없어서 굴러가지 못하는 격이다.
학원 강사의 강의 방식이 교사보다 더 훨씬 잘 가르친다. 일례로 아는 한 친구가 학교 이사장을 하고 있는데, 미국의 MIT 출신으로 학식도 있는 분이었다. 그 이사장은 교장에게 “우리 학교에서 실력이 1등인 교사 수업을 관람하고 싶다” 했더니 교장은 이사장을 모시고 1등 교사의 수업에 함께 참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사장은 1등 교사의 수업을 참관하고 난 후 교장을 불러 “1등 교사를 당장 해고하라”고 했다 한다. 그 이유는 그 교사의 수업 방식이 이것은 시험에 나오는 것이니까 반드시 외우고, 저것은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까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시험에 나오는 유무를 가려서 학습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하자, 교장이 그래도 우리학교에서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게 가장 많은 기여를 하는 교사이니 참조해 달라고 해서 해고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교육은 지식을 잔뜩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가 글로벌시대 살아남고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창의 교육’를 해야 하는 것이 교육 발전의 핵심(Key)이다. 지금의 교육 방식은 한국의 머리 좋은 인재들을 다 바보로 만든다. 주입식 교육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히 사회성, 도덕성, 인간성은 뒷전으로 쳐지기 마련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정보만 잔뜩 주입된 기형적인 성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입시니 뭐니 해서 시험이 많다 보니 지식은 주입해야 하고 몰두하다 보니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방법과 배려하는 마음, 사회성, 도덕성, 인간성을 기르는 교육은 안 되고 있다. 바퀴 없는 짐수레가 어디를 가겠느냐? 당연히 못 간다. 교육정책의 대대적인 혁신이 일지 않고서는 안 된다. 특히 지도층들의 인식 변화 있지 않고서는 바뀌어지지 않는다.
1970년대 강남 개발 당시 길을 좁게 만들어 일방통행 밖에 안 되어 앞에서 차가 없으면 역 주행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이처럼 아주 작은 일상 생활이지만, 사람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사는 것이 더 잘못된 것이다. 이것이 교육이 잘못되어서 그렇다. 사람 사는데 최소한의 도덕성과 인간성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렇다. 그리고 개발 당시 정책 담당자들이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해서 그렇다. 서울대만 해도 1970년도에 주차장이 없었다. 제가 1987년 기획실장 보직을 맡고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운동장 몇 개를 없애고 주차장을 만든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가정이고 학교고 인간성은 안 가르쳐 준다. 최근 조기 영어 교육 열풍이 거세다. 막 돌 지난 아이를 아동용 의자에 앉혀 놓고서 아이 무릎 앞에 영어 그림책을 놓고 엄마가 이유식 한 수저 떠 먹이고 코끼리 그림이 나오자, ‘엘레펀트’ 하는 것이 조기 교육이 아니다. 아이와 같이 놀면서 아이의 인간 됨됨이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조기 교육의 참된 의미이다.
교육의 근본은 선택이다. 수월성, 차별, 선택, 선별적 교육이다. 중등교육만 받고도 취업 할 수 있도록 하고, 고등 교육을 받으면 그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하고 중간 정도의 교육을 받고서도 사회에 기여하면 되는 교육의 분업화가 절실하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언제부터인지 모두가 다 일류대 서울대를 지향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결코 평준화 교육은 아니다.
학원은 기술이나, 기능을 가르쳐 주는 것이 본래 기능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된 것인지 학교에서 가르쳐 주어야 하는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사설 학원에서 훨씬 더 잘 가르친다. 우리나라 연간 사교육비가 17조원이라고 한다. 이것을 공교육에 투입하면 얼마나 많이 가르치겠는가.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우리애가 봉천동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그 어린 초등학생이 화장실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이 있다. 우리나라 관공서는 건물이 그럴듯한데, 학교 시설은 그야말로 정말로 초라하다. 교육의 근본은 최선의 자질을 갖춘 교수나 교사 그리고 시설이 주어져 국제경쟁력을 제공하도록 해 놓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모두들 불평만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지은희씨 처럼 임기가 끝났지만, 관선이사가 이사장을 차지하게 된다. 오너가 구성한 이사가 뭐 재판을 했다고 하지만, 그리 쉽지 않다. DJ시절부터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관선 이사를 많이 차지했다.
모 고교에 교장과 간부급 선생들과 대화의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전교조 성격이 어떠냐? 전교조들이 처음에는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순수한 의지를 가지고 출발했는데, 이것이 점차 이념화, 정치화되면서 자기들이 차지하려고까지 한다는 것이다. 교장은 앉아서 사무를 볼 수가 없다고 토로하는 것을 보았다. 전교조 소속 교사가 걸핏하면 교장실로 내려와 항의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아침 9시 정각에 오고 오후 5시 되면 퇴근하는 등 학교 일에도 소홀하다고 했다. 아마 학교 밖에 지역별로 모여서 이념 교육을 받고 ‘미국은 나쁜 놈들이고 북한은 좋은 곳이다’라는 식의 교육을 학생들에게 줄기차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제가 국가위원회 2년짜리 명예직을 국회의 추천으로 하다가 중간에 사퇴한 일이 있다. ‘민주화 보상’ 심의를 하느라고 판사들과 함께 일을 하다가 그만 둔 적이 있다. 왜냐하면 전교조 2천여 명이 위원회 사무실 앞에 몰려와 민주화를 인정하라고 위원들을 협박하는 등 교사들이 깡패나 하는 짓들을 목도하면서 아! 이게 아니구나 하면서 그만둔 적이 있다.
사학을 들여다보면 교사들의 노조 가입이 30%나 되고 학교 휘둘리는데 원인을 제공한다. 1980년대 한창 민주화 외치면서 시끄러울 때 애 학교 교장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 학교에는 20%만이 전교조의 진보 좌파이고 나머지 50% 이상은 심정적인 동정을 하고 있다”고 털어 논 적이 있다.
단적인 예로 평교사가 병이 나거나 출산을 하러 가면 교장은 아는 척 모르는 척 하는데, 이 전교조 교사들은 소주에 마른 오징어라도 사 들고 그 집을 방문해서 위로해주면서 전교조 가입을 은근히 의식화시킨다는 것이다. 정부가 획일적으로 규제하기 때문에 더 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
대학, 사학에 운동권이 점령하는 배경에는 초기에 사학들의 오너 중심의 운영의 문제점들이 많이 발견된 것도 한 요인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덕성여대의 친족들의 재산 횡령과 교직원들의 분규, 관선이사 개입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사장이 교수를 해고하고 인사에 일일이 관여하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빗나간 것이다.
사학재단들이 대학운영비의 10%도 안 내놓는 실정이다. 그러니까 학생들에게 등록금만 인상하고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서비스는 엉망진창이다 보니 학부모들로부터 빈축을 사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학들이 질타를 받고 있는데, 이는 개선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그 틈을 타고 누가 학교 운영권을 쥐려고 하느냐 하면 바로 운동권 출신 교수들이고 이들은 학생들에게 똑같이 전수하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좌경 터전의 거점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학이나 고등학교 등의 교육기관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일본의 유명한 경제학 교수가 런던대학에서 1983년에 「Why has Japan succeed?」를 출간한 적이 있다. 그 교수가 1990년에는 “일본이 왜 몰락하느냐?” 에 대한 답변으로 “일본인들의 정신, 산업, 교육의 황폐”라고 든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도 이런 현상이 작금에 목도되고 있어 미래의 한국의 모습이 우려된다. 憲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