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위원회 간담회/한국경제 : 저성장의 늪에 빠지다(15.10.14)
강금식 헌정회 정책실장/13대 의원
전 성균관대 교수
경영학 박사
한국경제 : 저성장의 늪에 빠지다
중국 : 환율전쟁에 가세하다
중국경제가 1978년부터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하면서 연평균 10%대의 고도성장을 이룩하고 “세계의 공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이로써 중국경제는 세계 경제성장에 30% 정도의 기여를 해오면서 중국의 경기 침체가 세계 경제의 침체로 바로 파급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왔다.
작년까지 7%대를 유지하던 경제가 그동안의 과잉 투자, 부채 누적, 부동산 버블 등으로 생산과 소비 등 실물 경기가 둔화되는 현상이 뚜렷해지자 정부는 올해 금리인하 등 비상수단을 사용하여 통화가치 끌어내리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이와 같이 중국 정부의 온갖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증시는 좀처럼 폭락을 그칠 줄 모르고 기업과 가계는 투자와 소비를 외면함으로써 수출과 수입은 점차 감소하고 내수는 꽁꽁 얼어붙는 막다른 골목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악화 일로에 있는 경기 침체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중국 정부는 8월 4.6%의 위안화 평가절하라는 극약 처방을 꺼내 들게 되었다.
올해 경제성장률 6.8%, 내년 5%대로 예상되는 경기 후퇴를 막아보고자 위안화 약세라는 환율전쟁을 통해서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고 성장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고육지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온갖 처방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불씨가 살아날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신흥국, 한국, 일본, 유럽, 미국 등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신흥국들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푼 막대한 유동성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해 왔는데 중국의 경기침체로 인하여 증시가 폭락하고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성장률이 둔화하여 세계 경기 위축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신흥국 시장에서 고수익을 즐기던 외국 자본이 선진국의 안전 자산을 찾아 빠져나가 27년만에 처음으로 순유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對中 수출 비중은 전체의 25%, 아세안 신흥국에는 57%를 차지하여 중국경제의 활력 저하와 신흥국의 성장 둔화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이 한국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와 높은 외환보유액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외국 자금이 빠져 나가고 원화가치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발 쇼크로 엔화 가치가 반등하며 아베노믹스에 따른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경기 불안 및 수출 둔화가 이어지자 곧 추가 금융완화가 예상된다..
한편 중국 기업들이 달러화 강세에 따라 수입량을 줄이기 때문에 미국의 對中 수출은 감소하고 있다.
미국 : 금리전쟁으로 응수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제로 금리를 유지함과 동시에 세계에 흩어져 있는 미국 채권을 되사는 양적완화 정책 사용으로 경기가 점차 회복 단계에 진입하여 왔다.
초저금리로 기업들의 자본조달 비용이 낮아졌으며 통화가치의 약세로 제조업의 대외 경쟁력도 개선되어 왔다. 양적완화는 주식 및 주택 가격의 상승을 초래하였고 이러한 자산 효과로 소비가 진작되어 경제를 떠받치는데 오히려 수출보다 더 강한 존재가 되었다.
미국경제는 금년 들어서도 탄탄한 회복세를 보이는 각종 지표가 발표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계속 호조를 보여 내년 전망치는 2.5%이며 실업률은 5.3%로서 거의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 일본, 유럽 등에서 앞다퉈 돈 찍어 통화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는 판에 미국 혼자만 달러화 강세를 유발하는 금리인상 카드를 들고 나오기가 무척 부담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초저금리의 지속으로 ; 활황국면이 지속하자 부동산을 중심으로 버블이 생길 우려를 미리 차단하기 위하여 9월에 금리를 인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내년 3월쯤으로 연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경기가 아무리 나쁘더라도 미국은 통화정책을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금리전쟁으로 응수할 것이 뻔한 사실이다. 지금 미국은 금리라는 창으로, 중국은 환율이라는 방패로 한판 붙을 형국이다.
막상 미국이 금리인상이라는 출구 전략을 현실화하면 달러화 급등 가능성이 높아져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외국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 증시와 환율 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금리인상이 중국의 금융시장 불안과 실물경기 둔화를 촉발하면 중국의 추가 위안화 절하가 예상되는데 그럴 경우 한국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KDI는 내년 중국 경제 성장률이 1% 포인트 하락하면 한국 성장률은 0.17% 포인트 떨어지고, 미국 금리가 1% 포인트 오를 경우 성장률은 0.1%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 : 먹구름이 몰려오다
지금 한국경제는 3,700억 달러라는 외환보유고와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 하나 자랑할만한 것이 없다. 당장 금년 경제성장률은 2.8%로 전망되고 내년에도 2%대 초반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잠재성장률에도 밑도는 저성장이라는 늪에 빠져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그동안 성장의 쌍끌이 역할을 해왔던 수출과 내수가 동반 침체하는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중국경제의 성장 둔화와 신흥국의 경기 위축은 물론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라는 대외 악재로 수출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9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어 오히려 성장률을 까먹는 불효자로 전락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최근 체결되었지만 한국이 왕따당함으로써 앞으로 수출, 일자리, 투자 등에 있어 피해가 예상된다.
한편 공공기관을 포함한 국가채무가 1,000조 원에 이르고 1,13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부담으로 빚 갚기에 허덕임과 동시에 600만 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할 여력이 없으니 내수 진작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요즘 할인행사 등으로 소비가 약간 회복되는 듯하지만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정부가 아무리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을 동원한다 해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오히려 빚만 늘어나고 정부의 재정건전성만 해치는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가 되는 실정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50여 년 동안 재벌기업들을 앞세워 제조업 수출 중심의 성장정책을 견지해 왔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의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하고 중국의 추격이 턱밑까지 따라 붙고 있는 상황에서 제조업 제품의 수출도 점차 쪼그라들고 재벌기업의 성장과 경제력 집중이 더 이상 한국경제의 성장에 기여치 못하고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작년 30대 재벌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710조 원에 이르지만 시설 투자나 연구 개발에 쓴 돈은 고작 64조 원 남짓이다. 투자를 하지 않으니 청년고용이 늘어날리 만무하다. 고용 없는 성장이 한국경제의 특징이 된 지 꽤나 오래 됐다.
이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 5년 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아예 1%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경기가 계속 침체국면으로 빠져들면 한국경제를 살리는 근본 해결책은 소득과 일자리를 늘려 내수를 활성화하는 길인데 이렇게라도 할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라 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할 것인가?
첫째, 빈부격차를 완화한다. 상위 5%의 소득 집중도는 30% 이상이고 국민총소득에서 기업 소득의 비중이 25% 이상이며, 4대 재벌의 1년 매출액이 국민총생산(GDP)의 60%인 부의 쏠림 현상을 시정한다.
둘째, 세제개혁을 단행한다. 법인세 25%로의 정상화, 누진율 적용, 직접세 비중의 확대를 위한 소득 분배구조를 고친다. 부자 증세, 서민 감세의 조세 정의를 바로 세운다.
셋째, 근로자들의 기본급을 올리고 근로시간을 주당 48시간까지로 단축한다.
넷째, 의료· 통신· 관광 등 고부가가치의 서비스산업 육성으로 구조를 개편한다.
다섯째, 대-중소기업간 동반 성장을 위해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 향상을 적극 지원한다.
여섯째, 임금인상을 노동생산성과 연계시킨다.
일곱째, 직무급·직능급 등의 임금체계를 도입한 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점차 편입시키고 일정한 유예기간이 지나면 이 제도를 철폐한다.
여덟째, 독점체제를 시정한다. 공정거래법의 개정을 통해서 재벌그룹의 독과점 체제를 완화토록 한다.
아홉째, 최저 임금을 인상한다.
열째,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 기능을 더욱 강화한다.
지금 한국경제가 직면한 저성장과 양국화의 위기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산업구조 개편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저항과 비난이 뒤따를 것이 뻔하다. 그러나 위기가 닥칠 때 이를 외면하려 들면 패망만이 있을 뿐이다.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로 미국경제를 살린 연준 전 의장 버냉키는 자서전 『행동하는 용기』에서 “모든 위기 상황 속에서 행동하는 사람들과 행동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들은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하여 위기를 돌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