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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포럼 -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관리자 2013-09-27 287

정책위세미나/ 韓國現代史의 體系와 理論(草藁)- 민중운동사와 대한민국사의 갈등-/(2013.9.26)

안병직(서울대 명예교수) 


韓國現代史의 體系와 理論(草藁)
- 민중운동사와 대한민국사의 갈등-


머리말
최근 고등학교교재『한국사』의 현대사부문의 기술을 둘러싸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간의 연구자간에 한바탕의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공개되어서는 안 될 뿐만이 아니라 잘 모르는 검정과정의 기술내용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논쟁이 단순한 학술적 논쟁이 아니라 정치적 논쟁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검정과정이 끝나 공개된 8종의 교과서의 내용을 검토해보면, ‘역사전쟁’을 방불케 하는 이러한 논쟁이 왜 필요했던가 하는 점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게 된다. 보수진영이 집필한 교과서나 진보진영이 집필한 교과서나, 모두 2011년에 작성된 「2009년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교육과정적용을 위한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따라 집필되었기 때문에, 한국현대사의 서술체계가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집필기준」에서 채용된 한국현대사의 서술체계는 민중운동사체계이다.
그런데, 이 민중운동사의 서술체계는 한국현대사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서술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현대사는 단순한 민주화운동사가 아니라 건국, 산업화 및 민주화운동이 복잡하게 뒤엉켜 진행된 과정이었다. 한국의 경제적 번영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화만 하더라도 단순한 민주화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건국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확립과 산업화에 의한 경제발전의 기초 위에서 비로소 그 실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한국현대사는 단순한 민주화운동사가 아니라 건국, 산업화 및 민주화운동의 과정이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대한민국사의 건국·발전사라는, 즉 대한민국사의 체계로 서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에 확정된 「집필기준」에서는 왜 민중운동사체계가 채택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가. 거기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한국현대사를 건국, 산업화 및 민주화운동의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는 대한민국사의 체계가 아직 정립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8년도에 뉴라이트의 교과서포럼에 의하여 저술된 대안교과서 『한국현대사』에서 대한민국사체계의 정립이 시도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이 체계는 보수진영의 한국현대사연구자들에게 조차도 제대로 수용되고 있지 않다. 둘째는 한국사학계의 현대사연구자들이 주로 민주화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한국현대사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저항운동사로 일관되어있는 북한의 민족해방투쟁사의 영향도 강하다.
한국현대사에 관한 연구상황이 위와 같기 때문에, 「집필기준」의 작성에 참여한 보수진영의 연구자들도 한국현대사의 서술체계문제에 대해서는 문제제기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은 「집필기준」의 작성에 있어서 겨우 「민주주의」이라는 표현대신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넣고 「UN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했다」는 구절을 삽입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2014학년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교과서『한국사』의 현대사부분에 관한 기술은 그 서술체계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서술전반에 걸쳐서 사실의 설명에 주로 치우치고 사실간의 이론적·논리적 관계에 관한 설명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하면, 서술체계가 잘못 선택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폄훼(貶毁)하는 기술이 많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술의 수준이 과연 고등학교교재로서 적당한가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하의 서술이 너무나 많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주된 이론적 뒷밭침이 없기 때문이다. 민중운동사라면 그 이론적 배경으로서 마땅히 혁명이론을 채택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현대사이니만큼, 비록 민중운동사라고 하더라도 혁명이론을 채택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론 없는 서술이다 보니까, 서술이 사실기술이상을 넘을 수가 없었다.

1 민중운동사체계
민중운동사체계의 원류(源流)는 일제시대사(日帝時代史)에 관한 서술체계에 있다. 일제시대는 식민지시대였으니, 거기에서는 일제의 침략과 한국인의 저항, 즉 「侵略과 抵抗」이라는 역사구도가 쉽게 성립할 수 있게 된다. 일제시대에 대해서는 한국의 보수진영도 이러한 역사구도에 쉽게 동의할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고집하기까지 한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구도는 과연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식민지시대라고 해서 온통 「침략과 저항」뿐이었다면, 우리가 식민지시대에 어떻게 조선시대의 백성으로부터 「근대민족」으로 재생(再生)될 수가 있었을까.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눈을 감게 되면, 우리는 쉽게 진보진영이 설정해놓은「침략과 저항」라는 역사구도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침략과 저항」은 식민지시대역사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식민지시대에는 「침략」도 있었지만 「개발」도 있었다. 식민지당국은 식민지를 착취하고 값싸게 지배하기 위해서 식민지의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혁하고, 투자도 하고, 또 근대교육을 보급시켜야 했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의 개발은 식민지당국의 개발뿐만이 아니라 식민지민중의 「자기개발」도 있었다. 피식민지민은 근대생활에 적응하기 위하여 「자기개발」이 불가피했다. 한국민도 일제시대에 근대적 산업을 일으키고 근대학교를 보급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생존을 위하여 식민지권력이 공급하는 교육기관에서 교육도 받고 식민지관공서에서 활동도 했다. 여기에서 식민지당국의 식민지적 「개발」과 한국인의 「자기개발」은 서로 복잡하게 얽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식민지적 「개발」과 「자기개발」사이에는 갈등과 협력이 복잡하게 얽히어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실상이었다.
그런데, 「침략과 저항」의 구도에서는 「개발」이 존재할 여지가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침략과 저항」의 구도는 자기 모순에 빠진다. 우선 저항주체로서의 근대적 독립세력이 어디로부터 탄생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독립운동이 해외의 독립운동뿐이라면 외국에서 근대적 문물은 흡수하여 자기변혁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국내의 농민운동, 노동운동 및 지식인운동 등의 근대적 독립운동세력은 어디로부터 탄생한 것인가. 식민지적 「개발」이나 「자기개발」이 없었다면, 그러한 독립운동세력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침략과 저항」의 구도는 일면적인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허구인 것이다. 북한은 「침략과 저항」이라는 그릇된 구도 속에서 식민지적 「개발」을 부정하고 「자기개발」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3대세습이라는 전근대적 전제왕조국가로 퇴행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교재『한국사』의 현대사부분서술은 「침략과 저항」이라는 민중운동사체계에 따라 서술되어있는데, 그 원형(原型)은 일제시대사의 서술체계에서 발견된다. 보수진영이 집필한 교학사의 『한국사』를 제외한 교과서 7종 중에서 가장 온건한 서술을 하고 있다는 지학사의 일제시대사목차를 보면 그러한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제1·2차세계대전 사이의 세계정세를 설명하고 있는 1부를 제외하고 나면, 2부는 침략에 관한 서술이고, 3·4·5·7부는 저항에 관한 서술이다. 「개발」을 서술해도 좋을 듯한 6부「일제강점기의 사회변화」에서도 「다양한 사회운동의 전개」와 「의식주생활의 변화」에 관한 기술뿐이다. 아마 오늘의 이 강연에 참가해주신 헌정회의 회원 여러분 중에서는 스스로 보수로 자처하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여러분들의 일제시대에 관한 역사상(歷史像)은 어떠한까. 혹시 「침략과 저항」의 역사상에 동조하시는 분들이 없으신지 모르겠다.
  
지학사의 日帝時代史目次
1부 세계대전과 동아시아의 변화
1. 제1차세계대전과 새로운 국제질서
2. 전체주의의 등장과 제2차세계대전
2부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경제수탈
1. 무단정치
2. 민족분열통치
3. 민족말살정책
3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 3.1운동의 전개
2.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4부 3.1운동이후의 국내민족운동
1. 실력양성운동
2. 민족협동전선
3. 대중적 사회운동
4. 민족문화수호운동
5부 일제강점기의 국외민족운동
1. 국외독립투쟁의 전개
2. 항일연합전선의 형성
3. 의열투쟁의 전개
6부 일제강점기의 사회변화
1. 다양한 사회운동의 전개
2. 의식주생활의 변화
7부 광복을 준비하는 움직임
1. 국내외의 건국준비활동
2. 국제사회의 움직임

일제시대를 설명하기 위한 민중운동사서술체계는 한국현대사의 기술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집필기준」이 한국현대사를 민주화운동사의 체계로 집필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필기준」의 한국현대사부분인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세계의 변화」의 제3항인 ③에서는 「4?19 혁명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발전과정을 5·16 군사정변 등 정치변동과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등 민주화 운동, 헌법상의 체제 변화와 그 특징 등 중요한 흐름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바탕으로 발전해 왔으며, 4·19 혁명 이후 전개된 여러 민주화 운동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이 신장되었음을 서술한다」고 있는데, 위와 같은 문장은 한국에서의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 민주화운동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기술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집필기준」은 지학사의 한국현대사목차 3부에서 잘 반영되어있다. 「3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에서는 그 서술세목(敍述細目)을 「1. 이승만정부의 권위주의통치, 2. 4.19혁명, 3. 5.16군사정변과 박정희정부, 4. 유신체제의 성립과 민주화운동, 5. 신군부의 등장과 5.18민주화운동, 6. 6월민주항쟁과 자유민주주의의 진전」으로 나열하고 있다. 지학사에서 펴낸 『한국사』교과서의 한국현대사의 서술에 따르면, 이승만정부, 박정희정부 및 전두환정부는 모두 반민주적 정부이고, 한국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은 오직 4.19학생의거이후 6월민중항쟁에 이르는 민주화운동에 의하여 이루졌다고 서술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과연 한국에서의 자유민주주의가 민주화운동에 의하여 확립되고 발전된 것인가.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1960년의 4.19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장장 50년간에 걸쳐서 전개되었지 왔지만, 언제 한번 제대로 된 자기의 민주주의체제에 관한 구상을 제시한 일이 있는가. 기껏해야 민주화운동은 역대정부에 의하여 수립되고 지켜져 온 건국헙법 이래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회복하라는 민주회복운동에 불과했던 것이 아닌가. 민주화운동의 저변을 이루었던 민중운동 속에는 인민혁명당, 통일혁명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및 민족민주혁명당 등의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하고 인민민주주의를 수립하려는 운동이 있었음을 자성(自省)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남북분단이라는 회생을 무릅쓰고, UN을 비롯한 우방과의 국제협력아래서 건국원훈들이 제정한 건국헌법 속에서 구현된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를 인민민주주의국가로 통일하기 위하여 6.25사변을 일으켰다. 이승만대통령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기 위하여 반공주의를 국시(國是)로 하고 1953년에 한미군사동맹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물질적 기반이 되는 시경경제체제를 창출하기 위하여 농지개혁 및 귀속재산불하를 단행했다. 더 나아가 국가재정이 미국의 원조에 의하여 간신히 유지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교육투자를 단행하여 교육혁명을 일으켰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는 건국헌법에서 구현되었지만, 그것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역사과정이 1987년의 민주화선언으로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하나의 역사적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학사에서 펴낸 『한국사』의 한국현대사부분의 어디에 위와 같은 기술이 있는가. 그저 「대한민국정부의 수립」과 「6.25전쟁」이라는 항목을 형식적으로 설정해놓고 있기는 하지만, 해방이후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확립하고 이를 지키려는 피나는 노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술이 없다.
한국에서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역사적 조건은 박정희정부시대의 경제개발이었다. 그런데 지학사의 교과서에는 이 경제개발에 관한 본격적인 서술이 없다. 이 교과서에서는 「4부 경제발전과 사회·문화의 변화」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그속에서 「1. 산업사회의 발달, 2. 산업화에 따를 사회변동, 3. 대중문화의 발달」을 평면적으로 서술하고 있기는 하지만, 1960, 70, 80년대에 걸쳐 국운을 걸고 진행시켰던 경제개발계획에 대해서는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하다」라는 제목하의 단 1페이지의 기술이 있을 뿐이다. 한국현대사의 60, 70, 80년대가 제1∼7차의 경제개발계획의 역사인데, 이것을 빼놓고 어떻게 한국현대사의 기술이 가능한가. 민주화운동사체계로 집필된 지학사교과서에서는 「3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항목에 「이승만정부의 권위주의통치, 5.16군사정변, 유신체제의 성립, 신군부의 등장」을 위치시켜놓고, 이들 권력들이 민주주의를 부정한 측면만 강조하고 있다. 이들 권력들이 민주주의를 제약한 것은 그대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이들 권력들이 단순히 민주주의를 질식(窒息)시키기 위하여 출현했던 것인가. 오히려 이들은 공산침략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민주주의실현의 물질적 기반을 창출하기 위한 경제개발을 위하여 출현했던 것이 아닌가. 여기서 진보진영의 연구자들이 한국현대사에 대한 기술을 의도적으로 왜곡을 하고 있다는 한편 경제발전의 뒷받침이 없는 민주주의의 실현이란 맹랑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지학사의 韓國現代史目次
1부 광복과 대한민국정부의 수립
1. 냉전체제의 성립
2. 8.15광복
3. 신탁통치를 둘러싼 대립
4. 대한민국정부의 수립
2부 6.25전쟁
1. 전쟁의 발발
2. 전쟁의 결과와 영향
3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1. 이승만정부의 권위주의통치
2. 4.19혁명
3. 5.16군사정변과 박정희정부
4. 유신체제의 성립과 민주화운동
5. 신군부의 등장과 5.18민주화운동
6. 6월민주항쟁과 자유민주주의의 진전
4부 경제발전과 사회·문화의 변화
1. 산업사회의 발달
2. 산업화에 따른 사회변동
3. 대중문화의 발달
5부 북한사회의 변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
1. 북한세습체제의 확립
2. 북한의 경제변화
3. 통일을 위한 노력
6부 동북아시아의 갈등과 협력
1. 동아시아의 갈등
2. 역사인식의 충돌
7부 세계속의 한국
1. 높아진 한국의 위상
2. 지구촌의 한국인
 
참고로 보수진영에서 집필한 ‘그 말썽 많은’ 교학사의 『한국사』의 현대사부분의 목차를 소개해둔다. 교학사에서 펴낸 『한국사』의 현대사부분은, 그 서술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많이 개선 되었지만, 역시 민주화운동사체계에 따라 서술되어있다. 왜냐하면, 교과서의 집필은 「집필기준」에 따라서 집필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학사의 『한국사』의 현대사부분도 한국에서의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은 민주화운동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처럼 서술되어있고, 제헌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제도가 확립되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기술하지 못했으며, 한국경제발전의 기본과정인 7차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을 거의 설명하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는 역시 민주화운동사중심의 서술체계에서 오는 것이라 할 것이다.
  
교학사의 韓國現代史目次
1부 냉전질서의 형성과 대한민국정부의 수립
1. 소련의 팽창정책과 미국의 봉쇄정책
2. 아시아의 공산화와 남북의 분단
3. 미소공동위원회와 단독정부수립운동
4. 남한에서의 좌우익투쟁과 정부수립
2부 6.25전쟁
1. 소련의 적화전략과 김일성, 중국
2. 6.25전쟁의 전개과정
3. 6.25전쟁의 피해
4. 전후재건
3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1. 글로벌체제의 경쟁 :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2. 이승만정권의 시련, 성취와 함정
3. 5.16군사정변과 반공체제의 확립
4.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제운동과 87년체제
4부 경제발전과 사회변화
1. 세계경제구조의 변동
2. 한국의 경제변화
3. 도시화와 대중문화의 성장
4. 갈등의 양상과 변화하는 가치관
5부 북한의 실상과 남북한간의 통일노력
1. 세계공산주의체제의 갈등과 붕괴
2. 김일성독재체제의 확립과 전체주의화
3. 북한의 구제적 고립과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
4. 북한인권의 실상과 국제공조
6부 올바른 역사관과 주권의식
1. 동북아시아영토분쟁의 배경
2. 민족주의와 동북아시아의 역사전쟁
3. 독도문제동
4. 동북공정문제의 해법
7부 국제적 위상의 향상
1. 세계와 인류적 책무
2. 한국의 원조지원활동과 평화유지활동
3. 한국대중문화의 재평가와 한류
4. 한인디아스포라와 교민정책
  
  
2 대한민국사체계
한국현대사의 서술을 위한 대한민국사체계의 정립은 2008년에 뉴라이트진영의 교과서포럼이 대안교과서『한국근·현대사』를 집필하면서 시도되었다. 당시에도 대한민국사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일제시대의 서술에 대해서는 보수진영에서조차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일제시대에 관한 서술을 제거하고 『한국현대사』를 재집필하면서 대한민국사의 체계는 보다 구체화되었다. 대한민국사의 체계는 다름이 아니라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이루어진 오늘날 한국의 번영이라는 관점에서 한국현대사를 재구성해본 것이다. 대한민국사체계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번영을 가지고 온 주요한 계기를 건국, 산업화 및 민주화로 보았다. 그리고 건국, 산업화 및 민주화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이들의 실현에 있어서는 국가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한국현대사를 대한민국사체계로 파악하여 본 것이다.(대안교과서『한국현대사』의 소개에 있어서는 거기에서는 논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논해야 할 사항도 포함시켜서 서술한다)
이 대한민국사체계는 민주화운동사체계와는 대척적(對蹠的)인 점에 있다. 대한민국사체계는 반공주의, 권위주의정치체제 및 국가적 대외의존 등 현재적 관점에서 볼 때 부정적인 것으로 보이는 계기도 오늘날 한국의 번영을 가져오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역할이 했다고 보는데 대하여, 민주화운동사체계는 이들을 모두 부정적으로만 평가함으로써 오늘날의 한국이 어떻게 번영을 가져왔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더 나아가 오늘날 한국의 번영을 인정할 수도 없게 된다. 한국의 진보진영이 아직도 반미적·친북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민주주의도 실현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발전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있다. 여가서 우리는 한국현대사로서의 민주화운동사체계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이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당연히 대한민국사의 일부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현대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민주화운동사를 대한민국사의 일환으로 편입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교과서포럼이 저술한 『한국현대사』의 목차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다. 「1부 현대세계사의 이해」에서 「동서냉전, 식민지의 독립, 자본주의의 번영, 세계화의 물결, 현대세계속의 한국」을 차례로 설명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이후에는 냉전체제가 성립함으로써 제1차세계대전이후 블럭경제로 흩어져있던 자본주의진영은, 미국주도하의 자유주의진영으로 일원화되고, 공산주의와 대결하기 위하여 식민지의 독립을 촉진하고, 저개발국의 경제개발을 장려했다. 그 결과 세계화의 진전으로 자본주의권이 번영하게 되고,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록 한정된 국가에서이기는 하지만 저개발국가에서도 자본주의국가가 출현하게 되고, 한국도 세계사의 그러한 동향 속에서 자본주의국가로 발전하게 되었음을 서술하였다. 민주화운동사체계의 세계사의 동향에 관한 설명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다
「2부 해방과 국민국가의 건설」에서는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대한민국의 성립」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6.25전쟁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어떻게 국민국가로 발전되고 있었는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6.25전쟁에 의한 국민국가성립의 직접적인 계기는 70만군대의 형성과 1953년의 한미방위조약의 성립이었다. 이승만정부하의 국민국가형성의 노력은 반공주의의 강화, 농지개혁에 의한 자립적 소농의 창출, 귀속재산불하에 의한 자본가계급의 형성 및 교육의 보급에 의한 인재의 양성 등이었다. 여기서 특히 중요했던 것은 근대국민국가성립의 2대요건중의 하나인 국민군의 형성이다.
「3부 근대화혁명과 권위주의정치」에서는, 「5.16쿠테타, 경제개발체제의 전개, 유신체제와 중화학공업화, 민주주의의 시련과 자립적 국민경제의 달성, 개발시대의 사회와 문화」을 차례로 서술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있어서 경제개발계획이 가지는 의미를 명확하게 하고 경제개발체제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였다. 여기서의 경제발전과 재정자립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경제발전에 의한 재정자립의 국민국가성립의 또 하나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4부 선진화의 모색」에서는 「민주화시대의 개막, 시장경제의 발전, 세계화의 물결, 사회와 문화의 새로운 조류, 21세기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를 차례로 서술하였다. 여기의 서술에서 중요한 점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실현은 경제개발체제로부터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며, 한국경제자립의 달성은 반드시 세계경제와의 관련 속에서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과서포럼의 『한국현대사』기술에서 두드러지게 부족한 점은 민주화와 민주화운동과의 관계에 관한 설명이다. 이점은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사의 서술체계와 민주화운동사의 서술체계는 판연(判然)히 다르다. 교학사의 『한국사』현대부분이 뉴라이트의 『한국현대사』와는 다르다는 집필자들의 주장은 급장(急場)을 피하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한국현대사의 기술체계가 다르다는 점을 말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교학사의 『한국사』현대부분에 대한 진보진영의 공격은 서술체계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교과서집필을 독점하겠다는 밥그릇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으며, 또 교학사의 『한국사』현대부분에 관한 기술을 가지고 진보진영에 의한 한국현대사에 대한 왜곡기술이 바로 잡힐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보진영의 한국현대사에 대한 왜곡기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술체계를 민주화운동사체계에서 대한민국사체계로 바꾸어야 한다.

교과서포럼의 韓國現代史目次
1부 현대세계의 이해
2부 해방과 국민국가의 건설
1. 대한민국의 성립
2. 6.25전쟁
3. 국민국가의 성장
4. 4.19민주혁명과 민주당정부의 좌절
3부 근대화혁명과 권위주의정치
1. 5.16쿠테타
2. 경제개발체제의 전개
3. 유신체제와 중화학공업화
4. 민주주의의 시련과 자립적 국가경제의 달성
5. 개발시대의 사회와 문화
4부 선진화의 모색
1. 민주화시대의 개막
2. 시장경제의 발전
3. 세계화의 물결
4. 사회와 문화의 새로운 조류
5. 21세기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보론 : 북한현대사
1. 북한의 건국
2. 6.25전쟁과 전체주의체제의 시작
3. 국방·경제의 병진과 주체사상의 등장
4. 권력세습과 김정일시대의 개막
5. 탈냉전시대의 도래와 북한의 위기

3 캐치업이론과 권위주의정치론
앞에서 필자는 내년부터 사용할 고교교재『한국사』의 현대사부분기술에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첫째는 서술체계의 문제이고, 둘째는 서술수준의 문제이다. 서술체계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검토했으므로, 앞으로는 서술수준의 문제를 검토해볼까 한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서술수준의 문제는 그러한 서술을 뒷받침할 수 있는 확실한 이론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로 되는 것은 과연 대한민국사를 설명할 수 있는 확실한 이론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론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사가 세계사의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먼저 찾아내어야 한다. 대한민국사의 세계사적 위치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사를 어떠한 각도에서 파악하려 하는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대한민국사를 한국자본주의발달사로 파악하고자 한다. 한국자본주의발달사가, 대한민국사의 모든 측면을 포괄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대한민국사의 대부분의 측면을 포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캐치업이론
한국자본주의는 세계자본주의발달사의 어디에 위치할까. 마르크스주의식으로 파악한다면, 20세기중엽이후에 전개된 세계자본주의의 제3파동기에 위치한다. 세계자본주의의 발달은, 16세기중엽의 제1파동기(波動期)에 대서양의 일각에서 성립한 선진자본주의, 19세기중엽의 제2파동기에 성립한 후진자본주의 및 20세기중반의 제3파동기에 성립한 후후발(後後發)자본주의라는 순(順)으로 발전한다는 것인데, 한국자본주의는 제3파동기의 후후발자본주의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선진자본주의는 자본주의발달의 선례가 없기 때문에 자국의 재래산업(在來産業)을 중심으로 발전하며, 후진자본주의는 재래산업의 발달도 있기는 하지만 선진자본주의로부터 받아들이는 근대산업(近代産業)이라는 발전도 있어서 복선적(複線的) 발전을 하며, 후후발자본주의는 재래산업의 발전이 없거나 있어도 지극히 미약하기 때문에 선진국으로부터 근대산업을 받아들이면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자본주의는 선진자본주의에의 캐치업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 캐치업을 통한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은 이미 19세기중엽으로부터 발달했다. 19세기중엽의 프리드리히·리스트의 보호무역이론, 1930년대의 아카마츠 카나메(赤松 要)의 안행형(雁行型)경제발전론, 1950년대의 알렉산더·거센크론의 후발성(後發性)이론 및 1980년대의 캐치업이론이 그것이다. 위의 각 이론들의 내용을 여기서 구체적으로 소개할 여유는 없으나, 이 이론들에 의거하게 되면, 한국의 경제발전과정은 매우 논리정연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이론들을 종합해서 후후발자본주의발달의 특징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후후발자본주의의 발달은 국제무역으로부터 시작한다. (2)후후발자본주의의 산업발달과정은 선발자본주의국의 사양산업의 이식과정(移植過程)이다. (3)후후발자본주의는 선발자본주의로부터 최신의 기술을 수입할 수도 있고, 선발자본주의가 미쳐 이용하지 못했던 국가나 투자은행을 경제발전기구으로 활용할 수 있다. (4)후후발자본주의는 자유무역체제하에서 선발자본주의국에서 수백년에 걸쳐서 축적된 자본이나 가술 등 높은 성장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고도성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2. 권위주의정치이론
종래 저개발국의 정치체제는 대개 독재이론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일부의 저개발국에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출현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만약 그렇다면, 저개발국의 정치체제를 특정인의 장기집권의 수단으로만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저개발국의 독재체제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실현의 수단이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승만과 박정희의 권위주의체제를 회고해보면, 그것이 독재를 위한 독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재를 독재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의 왜곡이라고 한다면, 권위주의체제가 단순한 독재라고만 비판하는 것도 권위주의체제하에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달성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사체계로 한국현대사를 서술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민주화가 오로지 민주화운동의 산물이라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우선 민주화운동의 주체인 학생층, 노동자층, 농민층 및 지식인층은 어디서 성장한 것인가. 그들이 한국근대화의 산물이라는 것은 참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1987년의 민주화의 기반이 되었던 민주주의제도와 경제발전은 어디에서 출현했는가. 권위주의청치체제의 산물이 아니었던가.
  
위와 같은 캐치업이론과 권위주의정치체제론을 가지고 한국의 현대사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는 각자가 생각해볼 일이다. 다만 여기서는 한국현대사에 관한 수준 높은 서술을 위해서는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는 점만 지적해두고자 한다.

맺음말
이미 하고자 하는 말을 다했기 때문에 맺음말은 생략했으면 한다. 여러분들의 혜량(惠諒)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