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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문제연구특위 강연회- 임상선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관리자 2013-05-28 273
헌정회 영토문제연구특위 강연회/ 동북공정의 현황과 대응방안(2013.4.25) 임상선(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동북공정’ 1.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동북공정’은 2002년부터 5년간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과 동북 3성이 연합해서 추진한 중국의 국책 연구사업이다. 동북공정은 ‘현재’의 필요를 위해 과거의 이미지를 새로 만들어 중화민족 국가의 역사적 연원을 찾고 있다. 동북공정은 연구류(기초 연구와 응용연구를 포함), 번역류와 공문서 자료류의 3대 계열로 나뉘며, 연구류에는 고대 중국 강역 이론연구, 동북지방사 연구, 동북민족사 연구, 고조선․고구려․발해 역사 연구, 중조관계사 연구, 중국동북변강과 러시아 극동지구 정치, 경제 관련사의 연구, 동북변강사회 안정 전략 연구 등 110여개 과제가 수행되었다. 동북공정의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고조선․발해의 역사까지 중국사로 편입시키려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더 나아가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대비한 역사적 명분 마련을 위한 중국의 국가전략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2004년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에 항의, 이 해 8월 한중 양국이 구두양해각서에 합의, 중국측에서는 이를 학술적인 문제에 한정하고, 더 이상의 역사왜곡을 확대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였다. 2006년 9월과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의 원자바로 총리와 후진타오 주석에게 이 문제를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하였고, 2007년 2월로 5년 계획의 동북공정은 외견상 종료되었다. 그러나 중앙이 주도하던 연구가 지방정부 기관이나 대학으로 옮겨져 “동북공정식” 인식을 담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2002년 이후 지린성에는 ‘지린성 고구려연구중심’, ‘고구려연구기지’, ‘고구려연구원’, ‘고구려․동북민족연구중심’ 등 여러 기관이 세워졌고, 랴오닝성에는 ‘중국동북사연구중심’이 만들어졌다. 이 연구기관들에서는 고조선사, 고구려사, 발해사 등 우리 고대사 관련 연구를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동북공정의 결과물들이 사업기간 중에 책으로 출간되었거나 앞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이 서적들에는 “동북공정식” 역사인식이 담겨있다. 한번 세상에 나온 역사서는 없앨 수가 없다. 그러므로 동북공정은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에도 지속될 문제이다. 동북공정의 연구 결과들은 학술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고구려·발해 유적지의 표지판이나 박물관의 안내문, 대학 교재 및 교양서 등에까지 수록되고 있다. 이제 동북공정은 전문학자들의 영역을 벗어나 학생들과 일반 중국인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쳐가고 있는 것이다. 2. 동북공정의 추진 배경과 목적 이른바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의도에 대하여,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은 “동북아의 정치경제지위가 나날이 높아가고, …… 동북아중심에 위치한 동북변강지역이 극히 중요한 전략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정세에서 …… 동북변강의 역사와 현상의 연구가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 동북변강지역의 안정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중앙의 비준을 거쳐 중국사회과학원과 동북3성이 연합하여 5년에 걸쳐 수행할 대형학술과제를 기획하였고, 2002년 2월에 이 사업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표면적일 뿐, 그 배경과 목적은 다양한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남북한에서 고조선사, 고구려사, 발해사를 한국사라고 주장하는 논리들을 체계적으로 연구 분석하고, 기존의 관련 자료들을 발굴․정리하여, 이들 역사가 중국사라는 자체 논리를 개발하려는 것이다. 만약,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 한국사’라는 논리가 지속될 경우, 몽골이 원나라 역사를,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가 서역사를 각각 자국사로 주장하는 상황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은 국가주의 역사관, 특히 각 민족의 단결을 강조하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동북지역에 적용하여 중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완결하려고 한다. 동시에 조선족이 중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가져 동요하거나 이탈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려 애쓰고 있다. 셋째, 향후 한반도 정세변화와 직결된 전략적 관점에서,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중국이 그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며 진입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2012년 미국 의회조사국은 ‘한반도 영토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주장’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이것은 향후 북한 유사시 그 영토에 대해 중국이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할 경우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었다. 넷째, 남북통일 이후에 불거져 나올지도 모르는 국경․영토 분쟁에 미리 대비한다는 의도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향후 남북통일이 중국 동북지역 혹은 조선족 사회에 미칠지도 모르는 영향도 함께 고려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점에서 ‘동북공정’은 우리 민족의 현재 및 미래와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 3. 동북공정 주요 논리 비판 1) 고조선 및 상고사 중국학자 중 일부는 은나라의 왕족인 기자가 고진국(古辰國)으로 이주해 고조선을 세웠고, 뒤에 주나라로 가서 신하의 예를 표했으므로 고조선은 주나라의 제후국이었으며, 기자조선이 위만조선으로 교체되며, 한이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4군을 설치했으므로 고조선사는 중국사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측 주장의 근거인 『상서대전』은 한나라 때에 편찬된 사서로, 그 이전 중국사서에는 기자에 관한 기록이 없다가 한나라 때에 갑자기 기자조선설이 나오게 된 것은 시대적 필요성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이주해와 나라를 세웠다면 물질적인 흔적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요동과 한반도 지역의 청동기문화는 중국과 다른 고유한 특징을 띠고 있으며, 성격상으로도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반면 은․주나라 때의 청동예기 등은 이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2) 고구려사 중국측은 고구려가 중국사라는 주장의 근거로 고구려를 건국한 예맥(濊貊)․부여(夫餘)․고이(高夷)․상인(商人)․염제족(炎帝族)이 모두 중국 고대민족이며, 고구려는 고대 중국의 영토 안에서 성립․발전․멸망했고, 고구려는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은 지방정권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또한 고구려와 수·당 간의 전쟁은 중국 내부의 통일전쟁이며, 고구려 유민 중 중국인이 된 사람이 더 많고,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가 아니니, 고구려는 중국사의 일부라며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는 중원에서 건너온 민족이 아닌, 요동과 한반도 중북부 일대의 토착족인 예맥족이 세운 나라이며, 그 건국도 현도군 경내에서 건국된 것이 아니라, 현도군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나라를 세운 후 한 번도 중국의 영토 안에 속했던 적이 없었다. 조공․책봉도 전근대시기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중국과 맺었던 외교관계로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속국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수·당의 고구려 침략은 분명히 중원 통일 후 중화세계를 동아시아 일대에 완벽하게 구현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고구려를 정복하려고 일으킨 침략전쟁이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국호로 나타냈고, 건국 초부터 고구려의 수도였던 서경(평양)을 중시하면서 북진정책을 추진했고, 특히 고구려사가 한국사에 속한다는 사실은 현재 우리의 국호가 코리아라는 점에서도 분명하다. 3) 발해사 중국측은 발해는 중국 고대 소수민족인 말갈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니,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이밖에 발해에 홀한주(忽汗州)를 두고 발해의 국왕을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으로 책봉하였음을 들어 발해가 당에 예속되었다고 한다. 발해는 당에 보낸 수많은 사절을 통하여 당 문화의 수입에 힘을 쏟았고, 발해 문화는 말갈 문화가 바탕이 되었고 건국 후에는 당 문화의 강한 영향아래 있었으니, 발해 문화도 국가적 차이가 아니라 중앙과 지방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말갈인이 발해의 건국에 참여하였고 그 주민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말갈인이 당(한족)보다는 오히려 고구려와의 역사, 문화적 공감대가 많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 국정을 운영하는 지배층도 고구려 유민이었다. 발해와 마찬가지로 신라와 일본이 당의 책봉을 받고 사절을 보내 조공하였지만, 신라와 일본을 당의 지방정권이었다고는 주장하지 않는 것은 중국학계의 모순이다. 발해의 문화에 말갈이나 당 문화에서 유래한 요소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고구려 문화의 영향이며, 발해 문화는 고유의 것에 더하여 당 문화를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영향을 주고 받았다고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4) 백두산 및 간도 중국은 간도협약으로 간도가 중국 영토로 확정되었고, 백두산정계비가 소백산에서 백두산으로 옮겼다는 ‘정계비 이동설’을 주장하며, 명대(明代) 이래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 지역(간도 포함)이 중국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즉, 중국의 간도 연구는 ①백두산 명칭 보다 장백산 명칭이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 ②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된 ‘토문’이 두만강이라는 점 ③백두산정계비의 최초 위치가 백두산이 아니라 소백산이라는 점을 입증함으로써 간도지역이 중국의 고유한 영토였음을 주장하는 데 중점이 두어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이나 고지도를 살펴보면 ‘정계비 이동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다. 백두산정계비 건립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기록이나 백두산정계비 건립 이후 백두산에 오르면서 백두산정계비를 보았던 사람들의 기록에서 백두산정계비의 위치는 백두산과 연지봉 사이에 백두산정계비가 그려져 있고 그 옆에 분수령이라고 적혀 있다. 4. 향후의 연구 및 계획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인의 입장에서 북방민족을 연구하고, 중국인의 입장에서 양국의 경계를 설정하고 있다. 한반도와 북방지역에서 활약한 민족 중 순수 한국민족과 관련된 것은 ‘한족(韓族)’ 뿐이며, 그 이외는 모두 중국민족의 일원이라고도 주장한다. 한국사․한국민족의 개념, 범위,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정치, 외교적 예지와 성찰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이미 출간되었거나 앞으로 출간될 결과물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을 통해 “동북공정식” 주장이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세계 사람들이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의 역사가 한국사에 귀속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납득할 수 있도록 관련 연구를 심화하고, 논리를 더 개발해야 한다. 한국사의 입장에서 상대가 되는 나라의 역사적 상황도 파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상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셋째, 고구려사나 고조선, 발해사 연구자 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역사분쟁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인 만큼 긴 호흡과 인내심이 요구되며, 이와 관련하여 고구려사나 고조선, 발해사 연구자 양성은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이다. 중국에서 신진연구자들의 숫자가 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신진연구자 양성에 힘을 쏟아야한다. 넷째, 우리의 연구 성과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한국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외국인들의 경우 중국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의 연구성과를 널리 알려 올바른 동아시아 역사관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자라나는 세대들이 성장하여 세계인들과 교류하게 될 때, 우리의 역사를 확실히 지킬 수 있도록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정체성 상실은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진행되지만, 정체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동북공정 자체가 학문에 국한된 사업이 아닌 만큼 지속적․체계적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령, 간도의 경우에는 역사적 상상력과 현실적 제약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북한의 급변시나 통일 이후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덧붙여 우리의 역사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관련된 여러 나라와 민족의 역사에 대해 넓고 깊게 연구하고 대화함으로써, 이해와 우호는 더욱 증진시키고 반목과 갈등은 해소하여, 평화와 신뢰의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